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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기–9: 입찰의 맛 [mim] 창업기

입찰의 맛

입찰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다. 기업 입찰과 관공서 입찰이다. 기업 입찰은 기업 홈페이지 공고나 광고 대행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관공서 입찰은 '나라장터'라는 사이트에 공지된다. 입찰을 준비하는데 있어 디자인 작업을 제외하면 정부 입찰이 기업 입찰 보다 어렵다. 정부 입찰은 보통 서류 준비가 까다롭고, 요청하는 서류 또한 관공서에서 발급하는 확인서들이 많은데 이 서류들을 받기위해서는 또 작고 큰 심사를 거쳐야 한다. 관공서 입찰 서류 준비하는데는 적어도 3~5일 정도가 소요된다. 또한 관공서 입찰을 위해 나라장터는 입찰 방식을 몇가지로 나누어서 진행하는데 보통 ‘지문 투찰’, ‘투찰’, ‘직찰’이 있다. ‘지문 투찰’은 보통 큰 규모의 예산을 다루는 사업에사 사용하며, 건설 등이 이에 속한다. 지문 투찰은 말 그대로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 담당자의 지문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지문을 조달청에서 확인하여 등록하기 위한 과정(서류 준비 등)이 만만치 않다. 다음은 ‘투찰’이다. 투찰은 말그대로 지문 없이 입찰에 참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라장터에 로그인하여 홈페이지상에서 서류등을 제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문 인식이 없을 뿐 지문 투찰과 그 과정은 동일하다. 세번째는 ‘직찰’인데, 직찰은 나라장터에 공지만 업로드하고 실제 서류는 나라장터라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직접 제출하여 입찰에 참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또한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만만치 않다.

입찰을 하게 되면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일단 나라장터에서 입찰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 나라장터에서 입찰을 하려면 온라인으로 조달청에 먼저 각종 서류를 구비하여 신청을 해야 한다. 하루 정도가 지나면 승인이 나는데 이 때 범용공인인증서를 발급받고, 지문인식기를 웹에서 결제한 뒤에 지방에 있는 각 조달청 지부로 입찰에 참여하려는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야 한다. (글쓴이는 초반에 지문 투찰과 투찰, 직찰을 구분하지 못해 모든 나라장터 입찰은 지문 등록기를 구비해야 하는 줄 알았다.) 방문하면 본인 확인을 거친뒤 지문인식기 모델을 선택하여 받은 뒤 검사관이 있는 앞에서 자기 지문을 등록해야 하고, 그렇게 등록된 지문 인식기에 범용공인인증서를 암호화 과정을 거쳐 다시 삽입해야 나라장터에서 입찰할 수 있는 조건이 완료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완료되어도 나라장터 내에서 모의입찰 과정을 통해 입찰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끝이 난다. 관공서 입찰은 거미줄 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서류들을 약 15~20가지 정도를 준비해야 입찰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이 완료되는 복잡한 구조이다. 특히 엑티브 엑스가 범람하는 정부사이트에서 각종 서류를 준비하면 다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인내심까지 갖추지 않으면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질 수 있다.

서류 준비가 끝나면 시안 준비를 해야 한다. 시안은 보통 더미(dummy) 텍스트로 작업하게 되는데 확실한 맥락 없이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모호한 결과물이 나오기 십상이다. 이런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입찰용 시안 작업은 본 작업보다 더 많은 회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시안을 약 2~3가지 정도를 완성해야 작업이 완료된다.

시안 작업이 완료되면 제안서를 작업한다. 제안서는 간단히 말하면 작업한 시안이 왜 적절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자료로 약간의 허세를 더해 작성한다. 시안에 대한 설명 이외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일정관리 계획, 보고 계획 등을 넣고, 마지막에는 관련 포트폴리오까지 삽입하면 작성이 완료된다. 하지만 관공서 별로 심사를 위해 4~8권 정도 가제본하여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데 제안서가 보통 30~60p 정도라고 보면 출력하는데도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특히 시안 작업 파일이 대부분 고퀄리티 이미지 이기 때문에 중간에 프린터가 에러나는 시간까지 합하면 넉넉하게 3시간 정도를 잡는 것이 좋다.

서류, 시안, 제안서가 완료되면 마지막으로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경쟁 프리젠테이션은 시안과 제안서의 내용을 직접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것으로 복장은 단정해야 하며, 프리젠테이션 어조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작업 시안에 대한 발표를 한 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잘 대답하면 완료 된다.

입찰은 보통 2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준비를 한다. 이 기간동안 앞서 이야기한 서류, 시안, 제안서 작업을 모두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그 동안 다른 일을 하지 못한 기회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준비 비용이 약 30~50만원 정도 사용된다. 이렇게 많은 기회비용과 에너지가 쓰이지만 여러 입찰 업체 중 하나의 업체만 선택되고, 나머지 업체들은 입찰 준비 비용에 대한 부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이는 애시당초 관공서 입찰 조건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업입찰의 경우 소액이지만 시안비 명목으로 약간의 비용을 지급하기도 한다) 소규모의 업체에겐 이러한 비용이 치명적인 경우가 많지만 입찰을 하지 않으면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일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이런 절박함 때문에 입찰 과정에 참여하는 업체를 더 불합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입찰은 디자인 업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에서 진행되는 제도이다. 입찰이 공정한 심사를 위한 것이라지만 주 정부 규모의 큰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들을 보면 딱히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소규모의 업체들만 더 어렵게 만드는 제도로 비춰진다. 입찰은 장기적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되거나 폐지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모두가 몰락하는 개미지옥식의 경쟁이 될 수 밖에 없고, 중소규모의 회사들이 성장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창업기–8: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할 때? [mim] 창업기

8번째 창업기를 기획하고, 초고를 노트에 적은지도 5개월가량이 지났다. 원래 초고의 제목은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할 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목과 내용에 생각이 바뀌었다. '?' 제목 뒤에 물음표가 그것인데.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경우들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포기하는 개념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라는 것은 그 크기와 관계없이 엄연히 경제적인 가치의 활동들이 본래 직업을 위해 선행된다. 예를 들어 의뢰자와 회의나 식사를 하거나, 회계와 기타 문서작업들을 병행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는 본래의 직업과 상관없이 선행되는 일이고, 이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이다. 의뢰자와의 회의 및 식사는 요구하는 바를 파악하여 결과물의 의견차이를 줄여 효율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고, 회계와 기타 문서작업들은 금전적 이익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을 지키기 위함이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면 앞서 이야기한 디자인 외적인 일들이 많아지고, 디자인에 투자하는 시간은 점점 뒤로 미루어지거나 축소된다. 그러다 보면 디자이너로서 갖는 회의감이 점점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 시점이 되면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혹은 "내가 디자인을 하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인지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이런 딜레마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2~3년쯤 되는 시기에 가장 크게 느끼게 되는데 운영자로서 상당히 힘든 시기라고 판단된다.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질 수록 미팅과 문서작업은 늘어나고, 디자인 작업에 투자되는 시간은 늘어난 프로젝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것인데 이때 디자이너를 더 뽑거나 일을 줄이는 식의 방법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선택도 디자이너로서의 자의식을 회복하기에는 부족한 방법들이다.

처음에는 이런 딜레마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제목도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할 때'라고 지은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딜레마의 원인이 디자이너의 역할 규정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각자 개인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언어적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인디자인 켜고 의도와 목적에 맞게 타입을 배열하여 공간적 균형감과 대비를 찾는 것을 '북 디자인'이라고 규정하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규정한 대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디자인을 행하는 시간'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의 규정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디자인을 행하는 시간'이 줄어듦으로 해서 우리를 직업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디자이너인가?'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지는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디자이너'를 한가지 개념에 규정짓고, 그것에 빗대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디자이너의 개념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일을 하는 것 같아"하는 식이다. 하지만 '디자인/디자이너'라는 개념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는 무형의 성질 아닌가? 게다가 학문적으로도 '디자인/디자이너'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보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회계와 미팅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행위의 규정에 벗어나는 상황들이 많아지더라도 이는 디자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 아닌 그 범주가 확장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변화가 제목에 '?'를 붙이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운영자로서 갖는 디자이너의 개념적 규정이 디자이너들 사이에 '대타자(the Other/Autre)'로서 존재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계속해서 상징화하고 변화해 하는 것이 운영자로서 오랫동안 스튜디오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만약 스튜디오 운영자로서 직업적 의식에 딜레마에 빠진다면 이는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그 언어적 개념확장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를 포기해야 할 때'가 아닌 '다시 디자이너이기를 판단해야 할 때'이다.




알리는 글
창업기의 원래 의도는 일기 처럼 쓰여지는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연재되면서 조금은 일기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꾸준하지 못해 1년만에 업로드지만 짧게 기획한 시리즈는 아니었습니다. 차근히 오랫동안 기록하고자 합니다.


스튜디오 창업기–00: 어느 때 보다 바쁜... [mim] 창업기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한다. 메일이 받은 것을 확인하고, 즉답해야 하는 것과 여유가 있는 것을 구분한다. 즉답이 가능한 내용들은 아이폰으로 작성해서 전송하고, 나머지는 사무실에 도착하면 보낼수 있게 다시 읽지 않음으로 표시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9시 부터 전화가 온다. 그럼 중간중간 전화를 받고, 급한 일은 노트북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근하면 세금계산서를 작성하고, 각종 서류들을 작성해서 보내거나 받는다. 그리고 나면 외부 미팅을 해야할 시간이 된다. 회의 장소로 가는 길에 회의할 내용들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특히 협상이나 계약이 진행되는 것들을 포기할 것과 아닌 것을 분명히 한다. 미팅이 끝나면 워크샵을 진행한다. 회사 실장에서 선생님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3시간가량 워크샵을 진행하고 나면, 컴퓨터에 앉아 디자인 작업을 한다. 진행상황에 따라 스케치를 하거나 인디자인을 바로 실행한다. 그리고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 해야할 분량까지 채우고 혹은 진행하고, 시간을 본다. 새벽이다. 그럼 택시를 타고 집에 귀가 한다. 샤워를 하고, 잠이든다. 그리고 몇시간 뒤 다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예고: 스튜디오 창업기-8: 디자이이너 이길 포기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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