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기–8: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할 때? [mim] 창업기

8번째 창업기를 기획하고, 초고를 노트에 적은지도 5개월가량이 지났다. 원래 초고의 제목은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할 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목과 내용에 생각이 바뀌었다. '?' 제목 뒤에 물음표가 그것인데.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경우들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포기하는 개념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라는 것은 그 크기와 관계없이 엄연히 경제적인 가치의 활동들이 본래 직업을 위해 선행된다. 예를 들어 의뢰자와 회의나 식사를 하거나, 회계와 기타 문서작업들을 병행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는 본래의 직업과 상관없이 선행되는 일이고, 이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이다. 의뢰자와의 회의 및 식사는 요구하는 바를 파악하여 결과물의 의견차이를 줄여 효율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고, 회계와 기타 문서작업들은 금전적 이익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을 지키기 위함이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면 앞서 이야기한 디자인 외적인 일들이 많아지고, 디자인에 투자하는 시간은 점점 뒤로 미루어지거나 축소된다. 그러다 보면 디자이너로서 갖는 회의감이 점점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 시점이 되면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혹은 "내가 디자인을 하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인지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이런 딜레마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2~3년쯤 되는 시기에 가장 크게 느끼게 되는데 운영자로서 상당히 힘든 시기라고 판단된다.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질 수록 미팅과 문서작업은 늘어나고, 디자인 작업에 투자되는 시간은 늘어난 프로젝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것인데 이때 디자이너를 더 뽑거나 일을 줄이는 식의 방법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선택도 디자이너로서의 자의식을 회복하기에는 부족한 방법들이다.

처음에는 이런 딜레마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제목도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할 때'라고 지은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딜레마의 원인이 디자이너의 역할 규정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각자 개인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언어적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인디자인 켜고 의도와 목적에 맞게 타입을 배열하여 공간적 균형감과 대비를 찾는 것을 '북 디자인'이라고 규정하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규정한 대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디자인을 행하는 시간'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의 규정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디자인을 행하는 시간'이 줄어듦으로 해서 우리를 직업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디자이너인가?'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지는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디자이너'를 한가지 개념에 규정짓고, 그것에 빗대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디자이너의 개념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일을 하는 것 같아"하는 식이다. 하지만 '디자인/디자이너'라는 개념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는 무형의 성질 아닌가? 게다가 학문적으로도 '디자인/디자이너'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보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회계와 미팅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디자인이라는 행위의 규정에 벗어나는 상황들이 많아지더라도 이는 디자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 아닌 그 범주가 확장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변화가 제목에 '?'를 붙이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운영자로서 갖는 디자이너의 개념적 규정이 디자이너들 사이에 '대타자(the Other/Autre)'로서 존재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계속해서 상징화하고 변화해 하는 것이 운영자로서 오랫동안 스튜디오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만약 스튜디오 운영자로서 직업적 의식에 딜레마에 빠진다면 이는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그 언어적 개념확장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를 포기해야 할 때'가 아닌 '다시 디자이너이기를 판단해야 할 때'이다.




알리는 글
창업기의 원래 의도는 일기 처럼 쓰여지는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연재되면서 조금은 일기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꾸준하지 못해 1년만에 업로드지만 짧게 기획한 시리즈는 아니었습니다. 차근히 오랫동안 기록하고자 합니다.


덧글

  • 2012/07/12 11: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15 14: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ㅏㅐㅏㅏ 2012/07/26 23:05 # 삭제 답글

    검색하다 블로그 들어왔는데, 글 잘읽다갑니다. 어느정도 공감!
  • 2012/08/10 16: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uirae 2012/08/10 18:40 #

    안녕하세요.
    연락처 남겨 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메일과 휴대폰 주소 남겨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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